흙은 어떻게 벽이 되었을까? 흙벽돌 건축의 시작 | 이야기 건축사 12
흙은 사람이 건축에 사용한 가장 오래된 재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흙벽돌의 의미는 단순히 주변에 있던 흙을 벽에 사용했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젖은 흙을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로 만들어 말리고, 필요한 곳으로 옮겨 반복해서 쌓을 수 있는 건축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정착생활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거처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하고, 고치고, 필요하면 다시 지을 수 있는 건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흙벽돌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반복 가능한 건축 단위로 바꾸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흙벽돌의 중요한 변화는 흙 자체를 처음 사용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비슷한 크기의 재료를 만들고 말린 뒤 필요한 위치에 반복해서 쌓을 수 있게 됐다는 데 있습니다.
1. 약 1만 년 전 정착생활은 건축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2. 흙덩이는 어떻게 반복해서 쌓는 벽돌이 되었을까
3. 흙벽돌집은 정착촌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4. 물에 약한 흙벽돌을 왜 계속 사용했을까
5. 자주 묻는 질문
6. ThinkBuilder의 한 줄 정리
1. 약 1만 년 전 정착생활은 건축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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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아시아에서 정착생활이 확대되던 시기의 주거를 재현한 장면 |
흙벽돌 건축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서아시아에서 나타난 정착생활의 확대를 봐야 합니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모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농사를 짓고 마을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변화의 속도는 달랐고, 정착생활과 식물재배, 동물 이용방식도 긴 시간에 걸쳐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무는 생활이 확대되면 건축에 요구되는 조건도 달라집니다.
사람이 반복해서 머물 공간뿐 아니라 식량과 도구를 둘 장소, 불을 사용하는 공간, 공동생활을 위한 시설도 필요해집니다.
집 한 채를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보수하고 증축하거나, 새 집과 시설을 계속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흙은 매우 현실적인 건축재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서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는 흙을 벽체로 사용하거나 흙덩이를 성형해 말린 뒤 쌓는 건축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고대 예리코로 알려진 텔 에스술탄은 이런 초기 정착생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이곳에는 약 기원전 10,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 활동층이 남아 있고, 기원전 9~8천년기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영구 정착지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집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성벽과 도랑, 거대한 석조 탑 같은 공동 구조물까지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흙벽돌 하나가 정착생활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착생활의 확대와 함께 보다 지속적이고 반복 가능한 건축기술도 함께 발전했다는 점 입니다.
서아시아에서는 흙을 이용한 건축이 널리 발달했지만, 스코틀랜드 오크니의 스카라 브레에서는 약 5천 년 전 돌로 만든 주택이 남아 있습니다. 신석기시대라는 이름이 같아도 시대와 지역,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에 따라 건축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 흙덩이는 어떻게 반복해서 쌓는 벽돌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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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성형해 건조시키는 초기 흙벽돌 제작을 재현한 모습 |
사람들이 처음부터 오늘날 벽돌처럼 크기가 정확히 같은 제품을 틀로 찍어낸 것은 아닙니다.
초기의 흙벽돌에는 손으로 빚은 덩어리형 재료도 있었고, 지역과 시대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다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크기와 형태의 벽돌을 반복해서 만들고 일정한 방식으로 쌓는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흙벽돌의 재료 역시 하나의 공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서 구한 흙과 물을 기본으로 사용하되, 일부 지역과 시대에는 식물성 재료 등 다른 성분이 섞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초기의 모든 흙벽돌에는 짚이 들어갔다” 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고대 흙벽돌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지역과 시기에 따라 재료의 조성과 제작방식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또 오래된 흙벽돌이 부서지면 그 흙을 새로운 건축재료로 다시 이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적도 있습니다.
흙벽돌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운 벽돌과 달리 주변의 흙을 성형하고 건조시켜 건축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흙벽돌은 후대의 가마에서 구운 벽돌과 다릅니다. 흙을 성형한 뒤 햇볕과 공기 중에서 건조시킨 재료가 훨씬 이른 시기부터 건축에 사용됐습니다.
3. 흙벽돌집은 정착촌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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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들이 밀집하고 지붕으로 출입했던 차탈회위크를 재현한 장면 |
흙을 일정한 단위로 만들어 쌓는 방식은 벽체를 계획하고 반복해서 만드는 데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흙벽돌이 사각형 집을 발명했다” 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직선 벽과 직사각형 공간의 발달에는 건축재료뿐 아니라 주거방식과 구조, 정착촌의 밀도, 사회적 생활방식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다만 반복 가능한 단위재료를 사용하면 벽체의 길이와 두께를 조절하고, 기존 벽에 새로운 공간을 덧붙이는 데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적 가운데 하나가 현재 튀르키예에 있는 차탈회위크입니다.
차탈회위크 동쪽 언덕에는 기원전 약 7400년부터 6200년까지 이어지는 18개의 신석기시대 점유층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의 집들은 매우 밀집해 있었고, 건물 사이에 일반적인 거리망이 거의 없는 독특한 정착형태를 이루었습니다.
여러 집이 서로 붙어 있었으며 주요 출입은 지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집 안에서는 생활과 작업, 저장 등에 사용된 공간과 설비가 일정한 질서를 갖고 배치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하나의 집이 반복되면서 개별 건축이 정착촌 전체의 공간구조와 연결되는 단계 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차탈회위크는 같은 장소에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건물을 다시 만들고 정착촌을 변화시킨 흔적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점은 흙벽돌 건축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물을 만드는 기술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보수하고 다시 만들면서 같은 장소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축방식 이었다는 것입니다.
4. 물에 약한 흙벽돌을 왜 계속 사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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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벽돌 벽의 표면을 다시 미장하며 보수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
햇볕에 말린 흙벽돌은 물에 강한 재료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비와 흐르는 물에 노출되면 표면이 침식되고 벽체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흙벽돌 건축에서는 재료 자체만큼 물을 어떻게 피하고 손상된 부분을 어떻게 보수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지역과 건축형식에 따라 지붕과 벽의 마감, 기단부 처리, 흙미장 등 여러 방법이 사용됐습니다.
여기서도 “모든 흙벽돌집에는 돌기초가 있었다”거나 “매년 미장을 다시 했다”는 식으로 하나의 방식으로 일반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흙벽돌 건축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재료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확보할 수 있고 다시 가공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남부 레반트의 텔 차프에서는 약 7,200년 전 흙벽돌을 분석한 결과 지역의 원재료가 일관되게 사용됐고, 오래된 흙벽돌 재료를 다시 이용했을 가능성도 제시됐습니다.
즉 손상된 부분이 있다고 해서 항상 건물 전체를 버려야 하는 재료는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곳을 다시 쌓고 표면을 보수하면서 건축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반복 가능한 건축방식은 집뿐 아니라 저장시설과 담장, 다른 정착시설을 만드는 데도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흙벽돌이 도시를 탄생시켰다고 말하는 것도 지나친 설명입니다.
정착촌이 커지고 복잡해지는 과정에는 인구와 생산, 저장과 교환, 사회조직 등 수많은 변화가 함께 작용했습니다.
흙벽돌은 그 변화의 원인 하나라기보다 늘어나는 건축수요를 감당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건축기술 가운데 하나 라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흙벽돌의 의미는 약한 흙을 영구적인 재료로 바꿨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변의 흙을 일정한 단위로 만들고, 쌓고, 보수하고, 필요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건축방식으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5. 자주 묻는 질문
Q1. 세계 최초의 흙벽돌은 예리코에서 만들어졌나요?
A.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남부 레반트에서는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이른 흙벽돌 건축이 알려져 있고,
예리코는 초기 정착과 건축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하지만 선사시대 자료와 연대연구는 계속 보완되므로
‘세계 최초’라는 표현보다는
‘가장 이른 사례군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Q2. 초기 흙벽돌에는 모두 짚이 들어갔나요?
A. 아닙니다.
흙벽돌의 조성과 제작방법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식물성 재료가 포함된 사례도 있지만
모든 초기 흙벽돌에 같은 배합법이 적용됐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Q3. 흙벽돌 때문에 도시가 생겼나요?
A. 흙벽돌 하나로 도시의 발생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정착생활과 생산,
인구와 저장,
사회조직 등의 변화가 함께 필요했습니다.
다만 반복해서 만들고 보수할 수 있는 흙벽돌은
밀집된 주거와 여러 시설을 계속 건설하는 데 유용한 건축기술이었습니다.
UNESCO World Heritage Centre|Ancient Jericho/Tell es-Sultan
UNESCO World Heritage Centre|Neolithic Site of Çatalhöyük
UNESCO World Heritage Centre|Heart of Neolithic Orkney
학술자료|Tel Tsaf의 흙벽돌 제작과 건축기술 연구
6. ThinkBuilder의 한 줄 정리
“흙벽돌의 중요한 변화는 흙을 처음 사용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변의 흙을 반복해서 만들고 쌓고,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건축 단위로 바꾸었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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