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의 저장 공간은 언제 생겼을까, 토기와 저장 구덩이에서 시작된 수납의 역사|이야기 건축사 10편

초기 수납과 저장 공간

집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이 머무를 자리를 만드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과 도구, 다시 사용할 재료를 어디에 둘 것인지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유적에서는 토기뿐 아니라 저장시설과 저장구덩이도 확인됩니다. 이 흔적들은 당시 사람들이 획득한 자원을 바로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일정 기간 보관하고 관리하는 생활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집의 크기나 구조가 아니라 물건의 자리를 따라 초기 주거공간을 읽어보겠습니다.

1. 정착생활은 무엇을 보관하게 만들었을까?

신석기 정착생활에서 식량과 생활자원을 보관하는 모습
신석기 생활에서는 먹거리와 생활자원을 일정 기간 보관하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신석기시대를 사냥과 채집이 끝나고 모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시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신석기 사람들은 수렵과 어로, 채집과 농경을 함께 활용했습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생업방식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획득한 먹거리를 어떻게 처리하고 보관하느냐였습니다.

도토리와 여러 종실류, 농경으로 얻은 잡곡, 어패류와 다른 식료는 획득한 즉시 모두 소비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창녕 비봉리와 울산 세죽 유적에서는 다량의 도토리와 저장구덩이가 확인돼 신석기인의 식료 관리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저장은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문제가 아니라 먹거리와 생활자원을 다음 시간까지 이어주는 생활기술이었습니다.

2. 토기는 조리도구이자 저장용기였습니다

신석기시대 토기에 식료를 담아 보관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신석기 토기는 음식의 조리와 보관 등 여러 기능에 이용됐습니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가 토기입니다.

토기가 등장하면서 사람은 식료를 끓이고 익히는 것뿐 아니라 그릇 안에 담아 보관하는 방법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빗살무늬토기도 하나의 용도로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크기와 형태에 따라 조리와 저장, 식사나 다른 용도로 이용됐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발형이나 옹형 토기 가운데는 식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이용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토기를 “인류 최초의 이동형 수납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흥미로운 비유일 수는 있지만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흩어져 있던 식료나 물건을 하나의 용기 안에 담아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입니다.

용기가 생기면 무엇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도 함께 생깁니다. 이것이 저장과 공간 사용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3. 땅속 저장구덩이는 무엇을 보여줄까?

신석기시대 저장구덩이를 이용해 식료를 보관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저장구덩이는 당시 식료 관리의 중요한 흔적입니다.

토기에 담는 방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석기 유적에서는 땅을 파서 만든 저장시설도 확인됩니다.

창녕 비봉리와 울산 세죽 유적에서 확인된 도토리와 저장구덩이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만 이런 저장구덩이를 “땅속의 일정한 저온을 이용한 선사시대 냉장고”처럼 현대적인 원리로 단정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땅속의 온도와 습도 조건이 지상과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각 저장구덩이가 정확히 어떤 환경조절 원리로 사용됐는지는 유적의 구조와 내용물을 따로 살펴봐야 합니다.

건축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사람이 생활하는 바닥 아래까지 보관공간으로 활용했다는 것 입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이 머무는 평면만이 아니라 땅 아래까지 이어지는 입체적인 생활영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4. 저장은 집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장시설을 이야기할 때 모든 식량과 물건이 움집 안에 있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한국 신석기 유적에는 주거지뿐 아니라 야외생활시설과 저장시설, 석기 제작장 등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이 확인됩니다.

즉 정착생활이 발달하면서 하나의 움집 안에서 모든 활동을 해결하기보다 집 안과 집 밖, 취락 내부의 여러 공간을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생활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앞에서 살펴본 마을 형성과도 연결됩니다.

개별 집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 주변의 작업공간과 저장시설, 공동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들이 함께 놓이면서 취락 전체가 하나의 생활공간이 됩니다.

다만 각 저장시설을 개인용인지 공동체용인지까지 일률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유적마다 규모와 배치, 출토자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5. 물건의 자리가 생기면서 공간도 달라졌습니다

사람의 생활공간과 저장용 토기와 도구가 함께 있는 신석기 움집 재현
생활시설과 저장용기, 도구의 위치는 움집 내부공간의 사용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공간에는 당연히 물건도 함께 놓입니다.

화덕과 기둥, 출입시설, 저장용 토기와 저장구덩이가 한 공간에 있다면 서로의 위치는 생활방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주 드나드는 길 한가운데에 큰 토기를 계속 두기는 불편했을 것이고, 불을 사용하는 화덕 바로 옆에 모든 물건을 쌓아두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이유로 움집 안에서도 사람의 자리와 물건의 자리가 어느 정도 달라졌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움집 가장자리가 최초의 수납전용구역이었다” 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생활도구 대부분은 남지 않았고, 같은 신석기 주거라도 지역과 시기에 따라 내부시설의 배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고학적으로는 남아 있는 시설과 유물의 위치를 통해 공간 사용의 가능성을 추정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6. 오늘의 집에서 수납을 보는 방법

현대 주택에서 생활동선과 수납 위치를 함께 검토하는 모습
현대 주택의 수납은 크기만큼 물건을 사용하는 장소와의 거리도 중요합니다.

선사시대의 저장시설이 현대의 붙박이장으로 직접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활과 물건의 위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질문은 오늘의 집에서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수납장을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 수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을 보고 들어온 식료품은 현관에서 주방과 팬트리까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외투와 가방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디에 두는지, 세탁물은 세탁기에서 건조와 수납까지 어떤 길을 거치는지를 봐야 합니다.

청소도구는 사용하는 장소에서 너무 멀지 않은지, 계절용품은 일상생활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 둘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평면도를 볼 때는 수납장의 총면적만 세기보다 무엇을 보관할 것인지, 어디에서 사용할 것인지, 얼마나 자주 꺼낼 것인지 를 먼저 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좋은 수납은 물건을 많이 숨기는 공간이라기보다 물건이 사용되는 자리와 보관되는 자리 사이의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Q&A)

Q: 신석기시대에는 농사를 지어 남은 곡식을 주로 저장했나요?
A: 그렇게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반도 신석기 사람들은 수렵·어로·채집과 농경을 함께 이용했고, 도토리를 비롯한 야생식물과 잡곡 등 다양한 식료를 활용했습니다. 저장시설 역시 특정 농작물만을 위한 시설이라고 일률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Q: 신석기 토기는 주로 저장용이었나요?
A: 아닙니다. 토기는 형태와 크기에 따라 조리와 저장, 식사와 의례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일부 발형·옹형 토기는 식료 보관에도 이용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Q: 현대 주택에서 수납공간은 얼마나 크게 만드는 것이 좋나요?
A: 정해진 비율 하나로 결정하기보다 가족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물건과 생활방식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현관용품, 식료품, 세탁물, 청소도구, 계절용품처럼 종류를 나눈 뒤 사용하는 장소 가까이에 필요한 수납을 배치하면 불필요한 수납면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ThinkBuilder의 한 줄 정리

"저장의 역사는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는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먹거리와 도구에 자리를 부여하고 사람의 생활공간과 함께 관리하기 시작한 과정입니다. 오늘의 수납도 수납장 크기보다 물건이 사용되고 돌아오는 길부터 설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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