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파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 정착 생활은 왜 움집을 만들었을까|이야기 건축사 5편

움집 주거 썸네일

동굴과 바위그늘은 훌륭한 피난처였지만 사람이 생활하기 좋은 모든 곳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석기시대로 들어서면서 한반도에서도 사람들이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은 다양한 형태의 움집을 만들어 생활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자연 동굴과 바위그늘이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지역과 생활방식에 따라 자연 공간과 사람이 만든 주거가 함께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변화는 사람이 주어진 공간을 이용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직접 만들고 반복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1. 움집은 어떤 집이었을까?

지면을 파고 기둥과 지붕을 세운 선사시대 움집의 재현 모습
움집은 땅을 파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만든 대표적인 선사시대 주거 형태입니다.

움집은 고고학에서 흔히 '수혈주거'라고 부르는 주거 형태입니다. 지면을 일정 깊이 파내 생활 바닥을 만들고, 기둥과 지붕 구조를 더해 내부 공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움집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평면이 원형인 집도 있었고 방형이나 장방형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으며, 기둥 위치와 화덕 형태, 출입구와 저장시설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움집이 널리 이용됐고, 서울 암사동 유적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따라서 움집을 하나의 정형화된 집으로 보기보다 땅을 파고 그 위에 구조물을 세운 여러 주거 형식의 큰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사람들은 왜 땅을 파기 시작했을까?

땅을 파고 움집 바닥과 기둥 자리를 만드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재현 장면
땅을 파는 방식은 지면 자체를 주거 공간의 일부로 이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움집을 만들려면 먼저 땅을 파야 합니다. 도구가 단순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노동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면을 파내면 별도의 높은 벽체를 모두 세우지 않아도 일정한 내부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파낸 흙벽 자체가 공간의 경계를 만들고, 그 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면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생활 공간이 됩니다.

땅속은 외부 공기보다 온도 변화가 상대적으로 완만하기 때문에 지면을 낮춘 공간이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 영향을 줄이는 데 일부 도움이 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현대 건축의 단열재와 같은 효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흙바닥은 습기와 냉기, 배수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움집은 단순히 “땅을 파면 따뜻하다”는 원리보다는 지면을 구조와 공간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이용한 주거방식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3. 움집의 단면에는 어떤 구조가 숨어 있을까?

기둥과 지붕 구조, 바닥과 화덕 위치를 보여주는 움집 단면 재현
발굴된 기둥구멍과 화덕, 바닥 흔적을 통해 움집의 구조를 추정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움집의 모습은 완전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기둥과 지붕 재료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발굴 현장에는 파낸 바닥과 기둥구멍, 화덕과 저장시설, 출입구 흔적 등이 남습니다.

고고학자는 이런 흔적을 바탕으로 기둥이 어디에 있었는지, 지붕이 어떤 방식으로 걸렸을지, 사람들이 내부를 어떻게 사용했을지 추정합니다.

대표적인 암사동식 움집에서는 중앙에 돌을 둘러 만든 화덕이 있고 네 모서리 쪽에 중심 기둥이 배치되는 형태가 확인됩니다.

그러나 모든 움집이 네 개의 기둥과 중앙 화덕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주거 평면과 기둥 배치, 화덕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화했습니다.

건축적인 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닥과 기둥, 지붕이라는 각각의 요소가 연결되면서 자연 공간이 아닌 하나의 구조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4. 움집 안에서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움집 안에서 화덕을 사용하고 도구와 생활용품을 두고 생활하는 모습
움집 안에는 화덕과 저장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함께 마련됐습니다.

움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발굴된 주거지에서는 화덕과 저장시설, 토기와 석기, 생활에 사용한 여러 유물이 함께 발견됩니다.

화덕은 조리와 난방, 조명 등에 이용됐고 일부 움집에서는 내부의 중요한 시설이었습니다.

특히 암사동식 신석기 움집처럼 화덕이 중앙에 배치된 주거에서는 화덕 주변으로 여러 생활 활동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거실과 주방처럼 공간의 용도가 명확한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리와 작업, 휴식과 저장 같은 여러 활동이 겹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건축적으로 보면 움집은 작은 하나의 공간 안에 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보여주는 초기 주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움집이 오늘의 집짓기에 남긴 교훈

경사진 대지와 주변 환경을 살피며 현대 주택을 계획하는 모습
현대의 집도 대지와 지형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서 설계가 시작됩니다.

움집을 오늘날의 반지하주택이나 패시브하우스의 직접적인 선조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구조와 설비, 생활환경도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움집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축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땅을 건물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입니다.

현대 주택에서도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거나 건물 일부를 지면 아래에 계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지형을 이용하면 건물과 주변 환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지만, 그만큼 배수와 방수, 환기와 채광을 더 세심하게 계획해야 합니다.

특히 지하 또는 지면과 맞닿은 공간은 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쾌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을 어떻게 차단할지, 지하수와 빗물을 어디로 배수할지, 벽체의 결로와 습기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구조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움집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지를 건축의 장애물로만 보지 않고 공간을 만드는 하나의 조건으로 읽되, 그 조건에서 생기는 장점과 위험을 함께 판단하는 것입니다.

6. 자주 묻는 질문(Q&A)

Q: 움집은 왜 땅을 파서 만들었나요?
A: 하나의 이유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땅을 파면 지면 자체를 공간의 경계로 이용할 수 있어 높은 벽체를 모두 만들 필요가 줄어들고,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 영향을 일부 줄이는 효과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습기와 배수, 지면의 냉기 같은 불리한 조건도 함께 있었습니다.

Q: 움집은 현대 패시브하우스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나요?
A: 직접적인 계보로 연결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 패시브하우스는 단열과 기밀, 창호, 열교와 환기 등을 정량적으로 설계하는 현대 건축 시스템입니다. 다만 자연환경과 지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관점에서는 움집과 비교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Q: 모든 움집은 중앙에 화덕이 있었나요?
A: 아닙니다. 움집의 평면과 화덕 구조, 기둥 배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서울 암사동을 대표하는 일부 신석기 집자리에서는 중앙 돌두름식 화덕과 네 개의 중심 기둥 배치가 특징적으로 확인됩니다.

7. 참고 자료

8. ThinkBuilder의 한 줄 정리

움집의 의미는 단순히 땅속에 집을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대지를 파고 기둥과 지붕을 세우며 필요한 생활 공간을 직접 조직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의 집짓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대지를 억지로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높이와 물길, 바람과 햇빛을 읽고 건물과 지형이 어떻게 만날지를 먼저 판단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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